이태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사람 <따뜻한 손>이 2023년 광주 동구의 미로센터에 광중민중항쟁 조형물로 들어섰다. 벌써 1980년 5월 광주 역사와 관련한 주요 공공미술로 자리를 잡았다. 4층짜리 미로센터 2층 빌딩 주차장 옥상 미로 가든에 오르면, 벽 뒤에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내민 거인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공연장이 포함된 미로센터의 방음벽을 세우며 설치한 10m가량의 조형물이다. 높이가 1,040cm, 폭과 두께는 540cmx650cm이다.
대나무로 만든 사람 형상이 거대하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뼈대를 세우고, 외피를 얇게 떠서 씨줄과 날줄로 성글게 엮어 원통형 인간이 되게 했다. 대나무 사람 <따뜻한 손>은 무등산을 등진 채 서향으로 엎져 있다. 해 뜨고 달 뜨는 동쪽 무등의 기운을 잔뜩 받아 두 손을 내민 거인의 형국이다. 항쟁에 참여한 시민이나 시민군의 형상이 아니다. 광주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 손을 잡아주려는 신인(神人) 같다.
대나무로 만든 사람 형상이 거대하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뼈대를 세우고, 외피를 얇게 떠서 씨줄과 날줄로 성글게 엮어 원통형 인간이 되게 했다. 대나무 사람 <따뜻한 손>은 무등산을 등진 채 서향으로 엎져 있다. 해 뜨고 달 뜨는 동쪽 무등의 기운을 잔뜩 받아 두 손을 내민 거인의 형국이다. 항쟁에 참여한 시민이나 시민군의 형상이 아니다. 광주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 손을 잡아주려는 신인(神人) 같다.
항쟁의 공간에 오월 조형물로 자리 잡아
<따뜻한 손>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할 만한 조형물로, 오월 정신을 미래에 이어갈 상징적 매개체로 미로센터의 자랑거리이다. 공연과 전시의 복합 문화예술 공간인 미로센터는 광주 동구의 오랜 ‘예술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월의 함성과 아픔의 공간인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금남로로 내려오면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골목으로 들어서면 만난다. 기록관은 도청과 함께 1980년 5월 27일 최후의 항쟁 터였던, 옛 YMCA 건물이었다. 분수대에서 내려와 항쟁기념공간이 된 전일빌딩 뒤로 금남로 북쪽 골목 예술의 거리에 들어서면 골동 가게, 화랑, 표구점, 액자 가게, 찻집 등이 있고, 주말이면 고미술 장터가 열린다. 광주 역사와 예술의 전통이 다져진 명소이다.이곳에 들어선 <따뜻한 손>은 최평곤의 오월 조형물로는 두 번째이다. 이보다 2020년 서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기획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에 먼저 선보인 <오월 파랑새>가 있다. 광화문 광장으로 열린 역사 마당에 세워졌던 두 개의 대나무 팔뚝 손이었다. 한 손은 꽃을 들고 주먹을 뻗은 형상이었고, 또 한 손에는 제목처럼 권총질하는 시늉의 총구 손가락에 파랑새를 앉혔다. 평화의 메시지와 위로를 건네는 작품으로, ‘침묵의 저항’을 평화의 손으로 표현했단다. <오월 파랑새>는 서울 마당에 오월이 지향하는 평화를 상징했고, 이어서 3년 뒤 항쟁의 현장에 조성한 작품이 <따뜻한 손>이다. 최평곤 작가는 조형물의 변을 아래와 같이 토로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넓은 계층의 문화로 소통하고 공동체 기반의 문화 공간인 미로센터를 재해석해 보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두는 행위로 위로를 통한 어울림에서 ‘공동체’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떠올리며, ‘우리’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의 이미지로 양손을 내밀어 안아주고 싶은 내지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을 이미지화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고, 오월 광주는 ‘나’라는 개인을 넘어선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으며 비극의 시대를 이겨내고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광주 시민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며 ‘따뜻한 손’을 제작하였다.”
1980년 5월의 아픔을 달래려는 최평곤 작가의 마음이 오롯하게 다가온다. 광주 동구 ‘미로센터 공간의 힘’으로 <따뜻한 손>은 벌써 지역 인사들의 상찬을 받았다. 몇몇 분의 평가를 들어보자.
“<따뜻한 손>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평등하게 만나는 대동 세상의 꿈을 담고 있다. 그것은 동학의 생명 사상과 절대 공동체를 구현한 5.18 광주 민중항쟁의 뜻을 연결하여, ‘민주인권 생명평화’의 위대한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광주 5.18 당사자는 물론 광주 시민과 세계인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이 작품은 위대한 항쟁의 도시 광주의 뜻을 담은 평화예술이다. 대나무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으로서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평화의 메신저이다.”(김준기광주시립미술관장)
“‘그리웠어요. 예쁜 내 사람아’ 든든하고 따스한 몸짓으로 손 내밀어 준 작가의 진심. 손님을 시민을 민중을 환대하겠다는 미로의 키 큰 의지. 진심과 의지가 벽을 넘어 예술로 우리를 맞이하는 순간.” (영화감독 진모영)
“세상의 모든 아픔을 따숩게 감싸주는 빛고을의 손길이어라!”(전라도사람 황풍년)
“푸른 대로 빚은 모양, 대동(大同)의 기상(氣像)인 듯!”(이향준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
작가의 분신으로 대나무 사람을 만들고
서해안의 당진 사람 최평곤은 이처럼 거대한 대나무 사람 죽인(竹人)을 만든다. 이는 동학 농민들의 삶과 항쟁, 그리고 농민들이 무기로 썼던 죽창에서 대나무의 역사적 상징성을 찿은 것이라 한다. 대나무 인간의 첫 작업은 공주 우금티에서 가진 1994년 《동학 100주 년 기념제》에서 선보였다. 대나무를 활용해 1894년에 일어선 4.5m 크기의 <갑오농민군>을 세웠다.우금티 고개는 승승장구하던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밀리기 시작한 역사 공간이다. 그 기념탑이 있는 고갯마루에 세운 최평곤의 <갑오농민군>은 포승줄에 묶인 채 몸을 살짝 앞으로 굽힌 좌절의 형상이었다. 통대와 뽀갠 대를 섞어 만든 죽인(竹人)이었다. 이때부터 최평곤의 작업은 작업실 주변의 대밭과 동행하였다. 충남 당진 야산 골짜기의 작업실을 가보니 상당한 경륜이 벤, 커담한 죽인(竹人) 공방이었다. 작품 주재료 대나무를 제공해 주는 빼곡한 대나무 숲까지 안성맞춤이었다.
최평곤의 대나무 사람 죽인(竹人)은 농민군이 사용했다는 죽창의 저항정신과 연계되어 있다. 더불어 그 형태를 살피니, 전통 죽공예품으로 죽부인이나 장태가 떠오른다. x자 형으로 듬성하게 짠, 1m 남짓 길이의 죽부인은 여름철 땀과 열기 나는 살을 대신해 끌어안고 잠을 청했던 도구였다. 2~3m 크기의 장태는 닭장이었다. 종횡으로 촘촘하게 짜 살쾡이나 야생동물로부터 닭이나 병아리를 보호하는 원통형 대나무 집이었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이 장태를 대형 전투용으로 제작해 활용하였다. 4~5명이 엄폐하는 방어용도로 쓰기도 했고, 내부에 불을 지펴 공격용으로도 사용했다. 특히 전쟁 초기 황룡강 전투부터 승리로 이끈 강력한 무기였다. 최평곤 작가가 벌써 30년째 대나무를 얇게 잘라 씨줄과 날줄로 짜면서 원통형 모양의 죽인(竹人)은 갑오년 농민군이 승리를 이끌었던 장태에 가깝다.
최평곤은 본디 회화과 출신이다. 우금티의 <갑오농민군> 이후 민중미술 운동부터 대나무 작가로 유명해졌다. 학창 시절의 그림 그리기보다 개인전이나 단체전에 설치나 입체 작업을 선보였고, 결국 대나무 작업에 매료되었다. 1999년 12월 31일 20세기 마지막 날 고향인 당진 왜목항 바다와 뭍을 연계해 가진 《최평곤 설치 작업전》에서, 작가는 죽인(竹人) 작업의 모두를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최평곤은 대나무 작업에 대한 확신을 내비쳤다. 4~10m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철 구조에 대나무 사람 19명을 새천년 맞이 바다에서 뭍으로 거대한 일어섬을 한 줄로 설치했다. 아미산 대나무를 잘게 쪼개 만들고 설치 작업을 마친 개막 날, 작가는 “오랫동안 외도 아닌 외도를 했습니다. 이제야 내가 가야 할 길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은 머리가 아니라 힘으로 만들었네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업 과정에서 머리로 생각하며 그리기보다 대나무로 일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의 진가를 터득했다고 한다.
이 설치 작품들은 2000년 음력 정월 보름달 ‘달집태우기’처럼 죽인(竹人)들에 불 놓기로 마무리했던 야심 찬 기획이자 대지예술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나무 사람의 탄생과 죽음, 생성에서 소멸 과정을 살폈다. 대나무 사람의 생명을 인간과 같은 길을 제시한 거대한 퍼퍼먼스였다. 여기서 최평곤 작가는 죽인(竹人) 작품에 대하여 “예술 작품은 계속 늙어가는 사람 같다. 시간에 반응하고 계속 변화한다.”라고 피력한다. 그리고 작가는 “태초부터 존재했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연물인 돌 속에 빅뱅의 빛 에너지 또는 마그마가 분출하는 힘 이미지를 상상하며 작품을 구상한다.”라며, 2005년부터 renew 시리즈로 정착했다. 작가는 아래처럼 얘기하였다.
“renew의 의미는 재생산됨, 다시 시작됨을 의미하며, 이것은 삶의 새로운 시작이다. 단단한 물성(화강석)은 상상 속 강한 힘으로 깨어지고 그 틈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강한 빛을 나타낸다. 그 빛은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또 하나의 힘이다. 그 힘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며, 우리의 삶이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현존성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고, 현재는 태초 생명의 근원과 시작을 의미하는 이미지로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대나무로 작업하는 순수 노동 과정에서 득도의 길을 만난 듯하다. 2013년 해인사 해인아트 프로젝트로 참여한 <내가 아닌 나>를 설치하며, 무심한 침묵의 6.5m짜리 반신상을 완성했다. “어느 날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내가 내가 아닌 걸 알았을 때, 지나온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이 내가 아닌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또 다른 나와의 충돌, 갈등들. 내가 아닌 나, 삶은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라고 작가 노트에 선어(禪語)를 쏟아냈다. 그런 탓인지 눈코입이 선명치 않고 속이 텅 빈 죽인(竹人)은 최평곤의 분신으로 다가온다.
최평곤은 전국의 기획전이나 단체전, 비엔날레 등에 늘 초청을 받아왔다. 특히 민중 역사 관련 전시나 자연 대지에서 이루어진 야외 설치에서는 단골이다시피 했고, 늘 크기부터 단연 으뜸이었다. 현재 작품이 설치된 소장처만 해도 20여 곳에 이른다. 서울 용산, 부산, 대구, 대전, 광주, 포천, 안산, 공주, 순천, 김제 벽골제, 하동, 양평, 평창, 임진각, 제주 등 전국에 분포해 있다. 2019년에는 오키나와 평화박물관에 진출했고,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도 시작되었다. 이들 최평곤의 죽인(竹人) 작업은 기획 주제에 따라 저항과 지킴, 평화와 희망, 그리고 침묵을 형상화해 왔다.
꾸부정한 죽인(竹人)은 오감 잃은 현대인이자 자화상
최평곤은 1994년 동학 100주년 기념전부터 동학예술제에 꾸준히 참여하며 작품을 냈듯이, 역사 조형물에서 진가를 냈다. 지난 30년(1995~2024)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환경 조형물이나 기념물을 조성하며, 그 아젠다를 ‘거대한 일어섬의 민중 의지’라 표현한다. 그리고 위로와 희망, 성찰, 평화 등을 실어내려 했다. 무엇보다 최평곤의 죽인(竹人)은 실제 침묵의 먹먹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마치 고독이나 묵상 이미지는 오감을 잃은 현대인 모습이자 작가 자화상 같기도 하다.서울 용산가족공원의 입상 <오늘>(2007년)이나 대구보건대학교 교정의 반신상 <일어서기>(2011년) 같은 고개를 떨군 인물상을 보면, 지금 거북목이거나 일자목으로 변한 자세이다. 스마트폰 문명사회 인간상처럼 보인다. 이 단계를 거쳐 작가의 생각대로 우리가 태초인으로 돌아가는 걸까? 더구나 물에서, 뭍에서 죽인(竹人)들이 늘어선 군상의 환경 조형물들은 움직임이 없어 더욱 그렇다. 5~6m에서 10m가 훌쩍 넘는 작품들은 크담한 덩치의 침묵하는 속 없는 인간, 곧 피식은 인간을 떠오르게 한다.
당진 왜목항에서 가진 《최평곤 설치 작업전》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1999~2000년)에 이어 장충동 국립극장에 설치한 8.5m와 9.5m의 껑정한 2명 입상 <월인천강지곡>(문광부 지정 《새로운 예술의 해 기념 전》, 2000년), 성곡미술관 전시실에 설치한 3명 죽인(竹人) <건너 간다> (2001년), 동대구역에 세운 5m와 9.5m 키로 각각 가방 든 이와 배낭 멘 이의 <오래된 이야기>(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 2004년), 분단의 현장 임진각에 흉상에서 전신상으로 4인의 언덕 넘기를 표현한 <통일 부르기>(평화누리 기획, 2007년) 등이 그러하다.
최평곤의 소리 없이 무덤덤한 지킴이 죽인(竹人)들은 우리 강과 땅과 어울려 제 역할을 한다. 그 형상은 마을 공동체나 특정 공간에 수호신으로 놓인 장승이나 벅수, 돌미륵 등 우리의 전통 민속 조형물을 떠오르게 한다. 옛 것의 재창조로 오늘이 소통하는 민중 삶과 역사를 읽게 한다.
평택 대추리 황새울 들머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현장에 세운 9.5m <대추리 지킴이>(2005년) 대나무 사람 2명은 조선시대 무덤 앞에 설치하는 무인석과 문인석 형상의 수호신을 닮은 이미지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예정지 강정마을에 6m짜리로 설치한 <강정 지킴이>(2011년)는 뼈만 남은 물고기와 머리에 파랑새가 앉은 반신상이다. 또 평창 알펜시아의 8.9m <형제>(2017년)를 비롯해서 안산 대부도 누에섬 해변에 주먹 쥔 양손을 내리고 바다를 향해 서있는 6.2m짜리
최평곤의 대나무 사람 작품에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복합돼 있다. 허리를 굽힌 자세나 손을 뻗은 동세 여기에는 새, 꽃, 나비, 나무 등이 단독으로 혹은 죽인(竹人)이 소지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용산 삼각지의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 상징 조형물인 <용오름-124년의 꿈>(2006년)은 23m 길이의 대작이었다. 김제 벽골제에는 <쌍룡>(2007년)의 형상을 철조로 만들어냈다. 이들은 대나무 다루는 솜씨의 진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산비엔날레 해운대 바다에서 모래사장으로 나오는 아기 안은 3.5~7.5m의 4죽인(竹人) <아기를 위하여>(2002년), 서울시립미술관 ‘분단의 벽을 넘어’ 전에 출품한 9.5m의 <파랑새>(2003년), 좌우 대나무 줄기 뻗기로 날개를 표현한 4.7m <나비의 꿈>(공주시 금강국제자연미술비엔날레 ‘오르는 사람’, 2004년), 4m~9m 아기 안은 엄마와 두 아이 좌우 네 <가족>(경기도미술관 기획 ‘공간을 치다’, 2007년), 세종시 기공식 조형물로 꽃을 한 송이와 두 송이를 각각 든 9m와 10.5m의 팔뚝 2기<희망의 손>(2007년), 전신상 머리 위 파랑새 꼬리 바짝 세운 10m의 <윗나루터 할아버지>(양평환경미술제,2009년), 제주현대미술관에 세운 3.2m의 <여보세요>(2009년), 반신상과 몸을 숙이고 손을 뻗은 6m의 <시선>(세종문화회관 기획 아트가든, 2010년), 8m짜리 나리꽃을 손에 쥔 팔뚝 <평화의 손>(부산시민공원 공원, 2015년), 허리 굽히고 오른손으로 꽃을 내리는 6m 거인의 <희망 드림>(대전 중구청 앞, 2015년), <파랑새>를 손에 들고 고개 살짜기 숙인 9.4m짜리 단발머리 소녀상, (제주 알뜨르 비행장, 2017년), 3.5m 반신상 <오키나와 파랑새>(오키나와 평화박물관 마부니 프로젝드, 2019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마당의 9m <오월 파랑새>(2020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최평곤 작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혼신으로 작업한 결과이다. 시기가 내려올수록 형상 갖춤이 세련되고, 이미지의 전달력이 또렷해졌다. 광주 동구의 미로센터에 설립한 <따뜻한 손>(2023년)은 바로 이들 작업의 연장 선상에 놓인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최평곤 죽인(竹人)의 최신작이자 최고 명품으로 꼽을 만하다.
죽인(竹人)은 생명체로 생성 소멸하고
겨울바람을 안고 순천 국가정원 연못 가에 세운 <돌아가는 길>을 보러 답사 간 적이 있다. 2016년 《순천 국제자연미술비엔날레》 때 설치해 순천시에 기증한 작품이었다. 현장에 보이지 않아서, 확인하니 2023년에 철거했단다. 작가에게 물어서 찾아갔는데 낭패를 보았다. 7년을 지키다 사라졌다. 작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무덤덤하게 “본래 내 작품들이 그래요”라며 자위하고 만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 논리에 숭응한다.그래서 최평곤의 작품들 가운데 죽인(竹人)의 짜임새와 스타일에 따라 스테인리스 스틸로 조성한 쇠 사람 철인(鐵人)도 등장한다. 대구 홈플러스 공원의 6.3m짜리 아이 안은 <아버지>(2002년), 김제 벽골제의 <쌍룡>(2007년), 서울 용산가족공원 버드나무 연못가에 심하게 고개를 떨군 6.5m 입상 <오늘>(2007년), 대전 중구청 앞 6m의 <희망 드림>(2015년) 등이 그 사례이다. 또 대구 보건대학교 교정의 <일어서기>(2011년)는 대나무 반원 기단에 선 스테인리스 스틸의 반신상이다.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정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순직 동문인 단원고등학교 교사 고 <김초원 선생 기림비>(2021년)는 스테인리스 스틸 꽃 모양 리본 막대기를 든 원피스 차림 단정한 자세 입상이다. 잔디 바닥에 세운 2.4m 키로 최평곤 작가의 소품에 해당한다.
이처럼 최평곤의 죽인(竹人)은 무기물 대나무가 아니다. 생명체이다. 살아 있던 대나무를 잘라 처음 작품을 만들 때는 초록색이었다. 설치한 현장에서 햇볕과 비 바람을 타 누렇게 변하고, 썩는 과정을 겪는다. 최평곤 작업실 마당에 들어섰을 때, 여러 죽인(竹人)이 눈길을 끌었다. 한 죽인(竹人)은 작업실 수호신처럼 거대하게 서 있다. 고개를 숙인 반신상도 있고, 꽃을 든 거대한 손도 보인다. 어떤 죽인(竹人)은 하반신을 잃은 채 죽은 시신처럼 누워 있다.
나는 2017년께 제주 답사하다 알뜨르 비행장 터에서 대나무 사람은 처음 대면했다. 9.4m짜리 거인 소녀가 두 손 모음에 <파랑새>을 앉힌 조형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비행장 터에 우뚝했다. 확인하니 제주 비엔날레에 참여한 최평곤의 작품이었다. 마침 겨울 지는 해가 작품의 머리에 걸치니 장관을 이루었다. 대구나 용산에서 살핀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최평곤의 죽인(竹人)은 설치 현장의 산 들 바다의 자연과 어울려 감명을 배가시킨다. 더욱이 해달이 뜨고 지고, 눈비가 오고, 하면서 대나무 줄 사이로 들락거리는 사계와 하루,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현상과 더불어 작품 이미지의 변화 자체도 장중하다. 최평곤 죽인(竹人) 작품의 예술적 백미이다. 최평곤은 우리 강산, 그 역사 현장이나 자연 현장과 함께하는 대지 예술가이자 환경 조형물의 대표 작가라 이를 만하다. 우리 땅과 어울려 발언하는 조형물 작가를 만나 반갑다.
동구 미로센터의 자랑거리, 거대한 죽인(竹人) <따뜻한 손>. 최평곤 작가가 “두 손을 내미는 몸짓을 통해, ‘따뜻한 손’에 안기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기회를 광주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싶었고, 미로센터 공간에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큰 ‘희망’이기를 바란다.”라는 작업 의도대로 <따뜻한 손>이 오랫동안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광주항쟁의 역사 공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도 설치 7년 만에 사라진 순천 국가공원의 <돌아가는 길>)(2016년)처럼 언제 소멸할지 모른다. 죽인(竹人)의 순환에 따라 재탄생도 보고 싶다. 쇠보다는 지금 변색하는 대나무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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